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프 르클레르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1945년 8월 18일, 태평양지역 프랑스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르클레르 장군은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 호 함상에서 이뤄진 일본의 항복조인식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했다. 그 후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으로 건너 가 코친차이나를 평정한 후 1946년 3월에 제 2 기갑사단을 이끌고 [[하이퐁]]에 상륙해 [[하노이]]에 진주했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일본군]]이 항복한 후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프랑스군의 복귀로 인해 농촌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이 때 르클레르 장군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독립운동 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해 '''살육자 르클레르'''라는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대 베트남 식민 정책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지는 않았던지 베트민 지도자 호찌민과 별도로 휴전 협상도 하고 프랑스 정부에게 독립운동 유혈 진압 중단과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1946년 7월 18일에 북아프리카 총감으로 임명된 르클레르는 현지에 부임했다가 1947년 11월에 승선중이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의 오텔 드 장발릿트 지하 성당에 묻혔다. 프랑스 정부는 1952년 8월 23일 고인이 된 그에게 원수 계급을 추서했다. 현대 프랑스군의 3.5세대 전차 [[르클레르 전차]]가 이 장군의 이름을 따게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